자유롭고 거침없는 인생 어릴 적 꿈꾸었던 ‘걸어서 세계 일주’를 실현하기 위해 안정된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7년간 세계 곳곳의 오지를 누빈 사람, 그리하여 ‘바람(Wind)의 딸’이라는 상쾌한 별명을 얻고 각종 행사의 초대 손님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마흔세 살의 나이에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1년간 베이징에 둥지를 틀었던 사람, 그리고 연수를 마치고 돌아올 즈음 ‘긴급구호 요원’이라는 생소한 직함을 들고 다시 새로운 세상에 뛰어든 사람.
한비야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렇듯 그는 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거룩하고 폼 나는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고,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만들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일에 최선의 최선을 다해 결국 하고 싶은 일만 해도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래서 자유롭고 거침없는 그의 행로는 이 시대의 새로운 역할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한비야의 매력은 이번 책에서도 선연히 드러나고 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해도 현실은 다르지 않느냐고... 물론 다르다. 그러니 선택이랄 수밖에...
난 적어도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새장 밖은 불확실하여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백전백패의 무모함뿐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새장 밖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새장 밖의 충만한 행복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새장 안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이 견딜 수 없는 뜨거움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늘도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가벼운 바람에도 성난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소진하고 소진했을지라도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기꺼이 쏟고 싶은 그 일은 무엇인가..
― 본문(14쪽)에서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盡人事’ 의 자세 이처럼 언제나 자유롭게 인생을 이끌어가는 한비야이지만 그에게는 삶에 있어 변치 않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모든 일에 겁내고 주저하기보다는 부딪쳐본다는 자세로 임하되, 일단 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진인사(盡人事)’한다는 것.
‘마음이 뜨겁다고 해서 어떻게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하는 일마다 다 잘할 수 있겠’냐마는 ‘진인사(盡人事) 했노라 말할 수 있다면 그 일에 미련도, 후회도, 원망도 없다’는 것이다.
99도까지 끓어오른 물을 멈추지 않고 100도까지 마저 끌어올려 ‘끓는 물’의 완성을 이루려는 마음가짐, 0.1퍼센트의 가능성만 보여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기, 천재가 하루아침에 이루어놓은 일보다 보통 사람이 몇 년에 걸쳐 땀과 열정을 바쳐 이룬 일을 훨씬 더 값지게 쳐주는 삶의 태도가 바로 한비야가 새로운 시대, 신지식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통해 종래에는 그것이 바로 세상과 자신이 만들어놓은 한계와 틀을 벗어나 자신 안에 숨겨진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는 ‘어리버리 생초자’ 긴급구호 요원에서 ‘중닭’으로 커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또 한 번 새로운 ‘미션’을 완수해, 새장 밖의 삶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새장 밖의 삶을 꿈꿀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다. 新국제화 시대의 진정한 세계화 7년간의 세계 일주 덕분에 오지 여행가로 더 널리 알려진 한비야가 이 책《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동안 그를 ‘바람(Wind)의 딸’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이야기들과는 사뭇 다르다.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고,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사람들의 삶 깊숙이로 파고드는 것은 예전 그대로지만, 그가 들여다보고 있는 곳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피하고만 싶어하는 세계 곳곳의 긴급구호 현장들이다.
고통받고 외면당하고 끝없이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곳……. 그러나 한비야 특유의 따뜻함과 적극적인 삶의 태도는, 우리에게 세상은 더 이상 먹고 먹히는 정글의 법칙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그보다는 우리 서로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 가진 것을 나누는 대상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리고 잊혀진 현장, 버려진 사람들까지 보듬어 안을 수 있을 때, 유난히 ‘우리’를 좋아하는 고품질 인정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들이 ‘우리’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 ‘우리 아시아’ ‘우리 세계’의 다른 가족들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어줄 수 있을 때,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전 세계와 진정으로 ‘지구촌 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1958년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국제 홍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홍보회사 버슨-마스텔라에서 근무하다 사표를 던지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 후 7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세계 오지 여행 경험을 담은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전4권)」,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걸으며 적어내려간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중국어 공부를 위해 한 해 동안 머물렀던 중국에서 쓴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등을 썼다.
네티즌이 만나고 싶은 사람 1위, 닮고 싶은 여성 2위, 여성특위가 뽑은 신지식인 5명 중 한 명, 평화를 만드는 100인(문화일보 주체) 등에 선정되었고, 2004년 ‘YWCA 젊은지도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제 NGO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의 몇 안되는 좋은 습관 매일매일 일기 쓰기, 수첩에 바로바로 메모하기, 종이에 도표로 문제적어보기
인질로 잡힐 때, 긴급구호 요원의 몸값은 0원.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지니, 세계 일주하면서 찍었던 사진이 생각난다.
에티오피아 시골 마을에서 말라리아 예방약 부작용으로 머리카락도 매일 뭉텅이로 빠지고, 눈이 시려 하루 종일 눈물이 나고, 급기야는 간이 나빠져 이 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몸져 누워 있을 때 찍은 사진. 사진 속의 나응 피골이 상접했지만 눈빛은 강렬하고 무엇엔가 아주 만족해하며 평안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내가 세계 일주 하며 찍은 수만 장 가운데 가장 아끼는 사진이다. 그날도 사이다만 겨우 마시고 숙소 침대에서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영어도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라고, 이런 탈진 상태로 더 이상 여행을 하는 건 무리라고, 일단 한국에 돌아가서 몸을 추스리자고, 또 무슨 일이든 도중에 그만두는 건 정말 싫지만 이번에는 불가항력이라고, 이 정도면 견딜 만큼 견딘 거라고, 내가 집에 간다고 해서 뭘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다고. 한번 집에 갈 생각을 하니까 한국에 가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들이 줄줄이 생각나며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 내일 당장 아디스 아바바로 가서 홍콩이나 방콕으로 가는 첫 번째 비행기를 타면 이틀 안으로 한국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고생 끝이다. 이 괴로운 토증과 이 지저분한 여관 방과 무거운 배낭에서 해방이다. 해방! 헌데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돌아가서 다시 홍보회사에 다니면 예쁜 옷 입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도 마음 한켠 그때 아프리카에서 그만둔 세계 일주를 끝까지 해볼 걸, 해볼 걸 하면서 살 것이다. 이정도가 정말로 돌아올 만큼 못 참을 일이었나 의심도 할 것이다. 열 살 때부터 꿈꾸어왔던 세계 일주를 그렇게 쉽게 포기한 나를 용서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몸은 편해도 마음은 불편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몸은 고생하지만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훨씬 행복한 것 아닌가. 이렇게 더 이상 못할 것 같아도 눈 딱 감고 한 번만 더 꾹 참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게 나의 최선이야, 이 정도면 나에게도 남에게도 떳떳해, 라고 생각할 때 그때 한 번 더 해볼 수 있어야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닌가. 그래, 그래, 지금 99도까지 온 거야. 이제 이 고비만 넘기면 드디어 100도가 되는 거야. 물이 끊는 100도와 그렇지 않는 99도. 단 1도 차이지만 바로 그 1도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가. 그러니 한 발짝만 더 가면 100도가 되는데 99도에서 멈출 수는 없어. 암, 그럴 수는 없지. 99도까지 오느라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말이야. 결국 그날의 결론은 '가기는 어딜 가'였다.